500억 개.
지구 인구가 80억이다. 한 사람당 6개씩 돌려도 남는 숫자. 1974년 4월, 50원짜리 과자 하나가 세상에 나왔고, 51년 동안 멈추지 않고 팔렸다. 누적 매출 8조 원.
이 숫자를 만든 게 뭘까. 초콜릿? 마시멜로? 아니면 포장지에 적힌 한 글자?
情.
촉촉함의 비밀

초코파이를 반으로 쪼개본 적 있는가. 비스킷 사이에 하얀 마시멜로가 늘어진다. 그 위를 초콜릿이 감싸고 있다. 단순한 구조다. 그런데 이 단순함에 비밀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빵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비스킷(Bis-cuit)이다. '두 번 굽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공장에서 갓 나온 상태에서는 딱딱하다. 마시멜로는 반대로 말랑하다. 이 둘을 합치면 시간이 지나면서 마시멜로의 수분이 비스킷으로 스며든다. 딱딱한 게 촉촉해진다. 그게 초코파이 특유의 식감이다.
겉을 감싸는 초콜릿도 그냥 초콜릿이 아니다. '준초콜릿'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코코아 버터 대신 식물성 유지를 쓴다. 단가를 낮추려는 목적도 있지만, 체온에 딱 맞게 녹는 융점을 맞추기 위한 과학적 이유도 있다.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 그 느낌. 우연이 아니라 계산이다.
제조 공정은 이렇다. 반죽을 둥글게 성형해서 오븐에 굽는다. 그 위에 마시멜로 크림을 짠다. 두 장을 합치고, 전체를 준초콜릿으로 코팅한다. 냉각. 포장. 끝.
글로 쓰면 간단한데, 오리온이 이 "촉촉함의 정답"을 찾는 데 1년이 걸렸다.
1973년, 조지아주의 어느 호텔

1973년. 동양제과(지금의 오리온) 과자개발팀장 김용찬은 미국 조지아주 출장 중이었다. 호텔 카페에서 초콜릿을 입힌 과자를 하나 집어 들었다. 한 입 베어 물었다. 비스킷 사이에서 부드러운 크림이 밀려왔다.
문파이(Moon Pie). 1917년부터 미국 남부에서 팔리던 과자였다. 김용찬은 여기서 착안했다.
하지만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1년을 실험했다. 비스킷의 두께. 마시멜로의 양. 초콜릿 코팅의 온도. 딱딱한 비스킷이 마시멜로를 만나 촉촉해지는 그 지점, 정확한 비율을 찾을 때까지.
1974년 4월. 한 봉지 50원. 당시 삼양라면이 30원이던 시절이다. 라면보다 비싼 과자. 싸지 않았다. 그런데 팔렸다.
“과자 하나에 50원. 자장면의 3분의 1 가격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자장면은 먼 존재였다. 초코파이는 동전 몇 개로 닿을 수 있는 가장 고급스러운 간식이었다.
”
20년 동안 100원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1976년, 초코파이 가격이 50원에서 100원으로 올랐다. 그리고 1996년까지, 20년 동안 100원 그대로였다. 물가가 몇 배씩 뛸 때도. 원자재 가격이 치솟을 때도.
동양그룹 창업주 이양구 회장의 고집이었다. "국민간식은 누구나 살 수 있어야 한다." 이 한 문장이 20년을 버텼다. 밀가루 값이 오르면 공정을 바꾸고, 포장재를 줄이고, 어떻게든 100원을 지켰다.
1996년, 경영권이 사위 담철곤에게 넘어가면서 가격이 150원으로 올랐다. 대신 무게를 31g에서 38g으로 늘렸다. 올리더라도 양을 더 주겠다는 거였다.
100원짜리 초코파이로 자란 세대가 있다. 그 세대한테 초코파이는 "싸고 맛있는 과자"가 아니라 "항상 거기 있던 것"이다. 20년의 가격 동결이 만든 건 충성 고객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당신은 어느 세대의 초코파이입니까

80년대생한테 초코파이는 소풍이다. 김밥을 다 먹고, 돗자리 위에서 마지막으로 꺼내는 디저트. 은박지를 벗기면 살짝 녹은 초콜릿이 손가락에 묻는다. 그걸 핥으면서 오후의 나른함에 빠져드는 그 순간.
90년대생한테는 군대다. 면회 오는 부모님 손에 꼭 초코파이 한 박스가 들려 있었다. PX에서도 살 수 있었지만, 면회 때 받는 초코파이는 다른 거였다. 집에서 온 거니까. 군종 행사에서 초코파이를 돌리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성당, 교회, 절을 다 돌아야 초코파이 세 개를 모을 수 있던 시절.
2013년 한국어 웅변대회에서 외국인 군인 리샤드 호르네 소위가 이렇게 외쳤다. "지금도 이 초코파이를 보면 13년 전 나의 카투사였던 최가 생각납니다. 눈물 젖은 초코파이, 드셔보셨습니까?" 이 연설은 인터넷 밈이 됐다. 군대와 초코파이를 관통하는 감정을 외국인이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버린 거다.
2000년대생? 편의점 아니면 학교 매점. 점심 먹고 나서 하나, 야자 전에 하나. 특별할 것 없이 일상의 일부.
세대가 달라도 하나는 같다. 초코파이를 혼자 먹은 기억보다 누군가한테 받았거나 건넨 기억이 더 선명하다는 것.
오리온이 그걸 알아챈 건 1989년이다.
정(情)이라는 발명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요."
이 멜로디를 모르는 한국 성인이 있을까. 1989년, 오리온은 초코파이에 '정(情)'이라는 콘셉트를 입혔다. 과자에 감정을 붙인 거다. 지금이야 브랜딩 전략이라고 부르겠지만, 당시에는 꽤 파격적이었다.
생각해보면 대단한 발견이다. 초코파이의 본질은 맛이 아니라 "건넴"에 있다는 걸 찾아낸 거니까. 한 개씩 낱포장되어 있어서, 옆 사람한테 "하나 드세요"가 자연스럽다. 상자째 가져가서 돌리기도 좋다. 소풍에서, 군대에서, 사무실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과자.
오리온은 거기에 이름을 붙였다. 정.
1995년, 아예 정식 제품명을 '초코파이 情'으로 바꿨다. 그리고 2011년에는 지상파 TV 광고로는 최초로 2분짜리 광고를 만들었다. "한국인의 정서를 15초에 담기엔 짧다"는 판단이었다.
“초코파이의 경쟁자는 롯데 초코파이가 아니다. 사람들이 마음을 전할 때 떠올리는 모든 것이 경쟁자다. 꽃다발, 편지, 커피 한 잔. 그 목록에 초코파이가 있어야 한다.
”
사실 '정'은 위기에서 나온 카드였다. 롯데(1979년), 해태(1986년), 크라운(1989년)이 차례로 '초코파이'라는 이름으로 미투 제품을 쏟아냈다. 이름을 빼앗긴 오리온이 꺼내든 마지막 카드가 정이었다. 결과는 90년대 단일 상품 최초 월 매출 50억 원 돌파. 이름표를 빼앗겼는데 오히려 더 강해진 거다.
브랜딩의 교과서 같은 사례라고들 하는데, 솔직히 교과서보다는 직관에 가까웠을 거다. 한국인이 초코파이를 실제로 쓰는 방식을 관찰했을 뿐이니까.
숫자로 읽는 초코파이
오리온 vs 롯데: 원조는 누구인가
이 논쟁은 한국 제과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떡밥 중 하나다.
오리온. 1974년 출시. 5년 먼저 시작했다. 시장 점유율 31%. '정'이라는 무기를 쥐고 있다.
롯데. 1979년 출시. 후발주자다. 점유율은 12%. 하지만 "더 바삭하다"는 팬층이 있다. 마시멜로가 좀 더 쫄깃하고, 비스킷이 좀 더 크런치하다는 거다.
어느 쪽이 더 맛있느냐. 이건 사실 답이 없다. 입맛의 영역이니까.
더 흥미로운 건 법적 싸움이다. 1997년, 오리온이 "롯데의 초코파이 상표등록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결과? 법원은 롯데 손을 들어줬다. 이유가 기가 막힌다.
"초코파이는 보통명사다."
그러니까 '초코파이'라는 단어 자체가 특정 회사의 것이 아니라, 그냥 과자의 한 종류를 뜻하는 일반 명사라는 판결. 오리온이 만든 이름이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더 이상 상표로서의 식별력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지금 편의점에 가면 오리온 초코파이, 롯데 초코파이가 나란히 놓여 있다. 둘 다 '초코파이'를 쓸 수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묻는다. "초코파이 어디 거 좋아해요?"
파이 전국시대
오리온의 독주를 막기 위해 경쟁사들은 다른 길을 택했다. 크라운은 빅파이를 만들었다. 마시멜로 대신 잼을 넣었다. 해태는 오예스로 응수했다. 비스킷 대신 케이크 시트를 썼다. 롯데는 몽쉘을 내놓았다. 크림을 넣었다. 전부 초코파이의 자식들이면서, 전부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다.
결국 '초코파이'라는 이름은 하나인데, 그 이름이 만든 시장은 수천억 원짜리가 됐다.
그런데 정작 오리온 자신은 42년 동안 초코파이의 맛을 건드리지 않았다. 2016년, 드디어 첫 자매품이 나왔다. 바나나맛. 개발은 3년 전부터 시작됐다. 딸기, 헤이즐넛 등 20가지 맛을 후보에 올렸다가 바나나를 최종 낙점했다. 이후 딸기, 말차라떼, 찰 초코파이(인절미/흑임자)까지. 51년 동안 한 맛만 고집하다가, 한번 문을 열자 줄줄이 나왔다.
국경을 넘은 과자
초코파이가 진짜 대단한 건 한국이 아니라 해외에서 벌어졌다.
러시아. 1993년, 부산 보따리 상인들이 초코파이를 사서 러시아로 들고 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러시아에는 '홍차와 함께 달콤한 과자를 먹는' 다과 문화가 있다. 차갑고 긴 겨울, 뜨거운 홍차 한 잔 옆에 초코파이 하나. 딱 맞았다.
2024년, 러시아에서만 16억 개가 팔렸다. 전 세계 초코파이 판매량의 40%다. 체리맛, 라즈베리맛, 블랙커런트맛. 한국에 없는 맛들이 러시아에서 팔린다. 잼을 넣는 건 러시아 식문화에 맞춘 현지화 전략이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전 대통령이 차를 마시며 초코파이를 먹는 사진이 언론에 실렸다. "대통령도 먹는 파이."
중국은 또 다른 이야기다. 붉은색 포장에 정(情) 대신 인(仁)을 새겨 넣었다. 한국적 정서를 중국적 덕목으로 바꾼 거다. 이게 통했다. 중국에서 오리온 법인 전체 매출이 1조 원을 넘겼다. 초코파이가 그 중심에 있었다.

베트남은 한 수 더 나간다. 연간 7억 개. 인구 1억 명이면 1인당 7개다. 오리온의 베트남 파이 시장 점유율은 70%를 넘는다. 그런데 숫자보다 놀라운 건 쓰임새다. 음력 설인 '뗏'에 초코파이 선물 세트가 불티나게 팔린다. 결혼식 하객 답례품으로 나간다. 심지어 제사상에도 올라간다. 과자가 의례의 일부가 된 거다. 호찌민 이마트에서 한 부부가 말했다고 한다. "뗏 선물은 무조건 초코파이."
“러시아에서는 홍차 곁에, 중국에서는 인(仁)의 이름으로, 베트남에서는 제사상 위에. 초코파이는 나라마다 다른 옷을 입었지만, 구조는 같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과자.
”
그리고 초코파이는 스크린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2000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북한 병사 오경필(송강호)이 초코파이를 먹으며 말한다. "내 꿈은 말이야. 언젠가 우리 공화국이, 남조선보다 훨씬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기야." 제작사가 이 장면에 투자한 금액은 100만 원이다. 초코파이 몇 박스 값. 그런데 영화가 흥행하면서 이 장면은 초코파이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이미지가 됐다. PPL이라기엔 너무 자연스러웠고, 대사가 너무 슬펐다.
5년 뒤 영화 말아톤(2005). 자폐성 장애를 가진 청년 초원이(조승우)에게 초코파이는 엄마와 자신을 잇는 연결고리다. 오리온은 초코파이를 협찬했을 뿐이다. 영화가 500만 관객을 넘기자 초코파이 매출이 크게 올랐다.
북한. 이 이야기는 좀 무겁다.
JSA에서 송강호가 초코파이를 먹던 그 장면. 4년 뒤 현실이 됐다.
2004년 개성공단이 열렸다. 북한 노동자들에게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지급했다. 그런데 이 초코파이가 장마당(시장)으로 흘러갔다. 하나에 몇 천 원씩 거래됐다. 보관이 쉽고, 크기가 일정하고, 누구나 가치를 인정하니까. 일종의 대체 화폐처럼 쓰인 거다. 초코파이 '계(契)'까지 있었다고 한다.
CNN이 "북한에서 초코파이 하나가 10달러"라고 보도했다. 과장이 섞인 숫자겠지만, 과자 하나가 체제의 균열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초현실적이다.
51년의 궤적
한 봉지 50원의 탄생
동양제과 김용찬 팀장이 미국 문파이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 한국형 초콜릿 파이의 시작.
100원으로 인상, 그리고 20년 동결
이양구 회장의 국민간식 철학. 1996년까지 100원을 유지하며 모든 세대의 기억에 자리잡다.
情이 붙다
초코파이에 정(情) 콘셉트 도입. 과자에 감정을 입힌 최초의 브랜딩.
러시아 상륙
부산 보따리 상인의 손에서 시작된 러시아 진출. 차 문화와 만나 국민 파이로 성장.
초코파이는 보통명사
오리온 vs 롯데 상표권 소송. 법원은 초코파이가 특정 브랜드가 아닌 보통명사라고 판결.
개성공단, 그리고 북한
북한 노동자 간식으로 지급된 초코파이가 장마당에서 대체 화폐로 유통.
42년 만의 첫 자매품
바나나맛 초코파이 출시. 3년간 20가지 맛 테스트 끝에 탄생.
역대 최대 판매량 경신
글로벌 40억 개 판매. 누적 500억 개 돌파. 60개국 24종.

과자가 정(情)이 되기까지
초코파이는 원래 그냥 과자였다.
초콜릿 입힌 비스킷에 마시멜로를 넣은 것. 미국에도, 일본에도 비슷한 게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구조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이 과자가 "정"이 됐다. 소풍에서 나눠 먹고, 군대에서 건네고, 사무실에서 슬쩍 올려놓고. 사람들이 초코파이를 쓰는 방식이 "정"을 만든 거지, 오리온이 만든 게 아니다. 오리온은 그걸 발견하고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북한에서는 화폐가 됐고, 러시아에서는 국민 파이가 됐다. 60개국에서 다른 이름, 다른 맛으로 팔린다. 하지만 한국에서만큼은 여전히 은박지를 벗기면 살짝 녹은 초콜릿이 손가락에 묻는, 그 과자다.
51년째.
누군가는 지금도 편의점에서 초코파이를 집어 들고 있을 거다. 별 이유 없이. 아니, 이유는 있다.
건넬 사람이 떠올라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