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새벽 3시, 코드 대신 손이 간 곳

새벽 3시, 코드 대신 손이 간 곳
2026. 03. 10/트렌드/11분 읽기스낵왕 에디터

72시간.

밥 아홉 끼. 수면 시간은 거의 0. 모니터 앞에 앉은 채로 해 뜨는 걸 세 번 본다.

해커톤이라는 행사의 실체는 숫자로 보면 이 정도로 건조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가장 바쁜 사람은 코딩하는 사람이 아니다.

간식을 채우는 사람이다.

해커톤을 모르는 분을 위해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을 붙인 단어다. 보통 24시간에서 72시간. 잠을 줄이고 팀을 꾸려서 뭔가를 만든다. 앱이든, 서비스든, 프로토타입이든.

예전에는 개발자들의 전유물이었다. 파이썬 할 줄 아는 사람들끼리 피자를 먹으며 밤새우는 행사. 그게 달라졌다.

해커톤 현장 — 노트북과 간식이 함께 놓인 작업 테이블
72시간 동안 노트북 옆자리는 항상 간식이 차지한다. (연출 이미지)

생성형 AI가 터졌다. ChatGPT, Claude, Gemini. 코드를 몰라도 말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온 거다. 기획자도 참여하고, 디자이너도 참여하고, 영업 담당자도 참여한다.

규모도 달라졌다. Google이 인도에서 연 Gen AI 해커톤에는 27만 명이 몰렸다. Anthropic의 Claude Code 해커톤에는 13,000명이 지원해서 500명만 뽑혔다. 2025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노코드 해커톤의 참가 조건은 이랬다. "프로그래밍 전문지식이 없는 만 20세 이상 국민 누구나." 개발자만의 밤샘이 전 국민의 축제가 된 거다.

5성급 호텔을 점령한 밤

GS 그룹은 2022년부터 매년 전사적 해커톤을 열고 있다. 처음에는 GS타워에서 300명 규모로 시작했다. 해마다 커졌다. 2024년에는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로 옮겨서 600명이 신청하고 351명이 참가했다. 2025년에는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에서 837명, 256개 팀. 호텔 연회장을 통째로 빌려 이틀 동안 밤을 샜다.

GS칼텍스, GS리테일, GS건설, GS에너지 등 19개 계열사에서 뽑힌 팀들이 모인다. 주유소 관리 직원, 편의점 바이어, 건설 현장 엔지니어가 한 테이블에 앉는다. 평소라면 일면식도 없을 사람들이다.

주제는 하나. 생성형 AI로 자기 업무의 문제를 풀어라.

한 GS칼텍스 직원은 아빠들의 육아 참여를 돕는 AI 앱을 만들었다. 업무와 아무 상관없는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허태수 회장이 직접 행사장에 와서 이런 시도를 격려했다. "구성원의 현장 지식에 AI가 결합하면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끝나고 가장 많이 이야기한 건 AI가 아니었다.

스낵바였다.

코드를 모르는 사람들의 반란

GS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26년 2월, Anthropic이 주최한 Claude Code 해커톤. 13,000명이 지원하고 500명이 선발됐다. 결과가 흥미로웠다. 수상자 5명 중 3명이 비개발자였다. 1위는 변호사. 캘리포니아 건축 허가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는 도구를 만들었다. 3위는 심장내과 전문의. 코딩 경험이 아예 없었다. 진료 기록을 환자용 건강 가이드로 바꿔주는 서비스를 전부 바이브 코딩으로 만들었다.

X(옛 트위터)에서 이 결과가 퍼졌다. "변호사, 도로 감독관, 심장내과의가 코딩 대회에 걸어들어왔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카카오도 2025년 사내 해커톤 "10K"에서 바이브 코딩을 도입했다. 기획자, 디자이너, 비즈니스 직군이 개발자 없이 팀을 꾸렸다. 이전에는 24시간이 걸리던 해커톤을 10시간으로 줄였다. 75팀 250명이 참가했다.

더 극적인 사례도 있다. 인도에서 TCS가 연 해커톤에 코딩 경험 없는 문과 대학생 1,800명이 모였다. 90분 만에 1,500개의 작동하는 앱 프로토타입이 나왔다. 의료, 교육, 농업 분야의 지역 문제를 푸는 앱들이었다.

이 모든 현장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밤새 돌아가는 스낵바다.

뇌는 생각보다 배가 고프다

잠깐, 과학 이야기를 좀 하자.

인간의 뇌는 몸무게의 2%밖에 안 된다. 그런데 몸이 쓰는 포도당과 산소의 약 20%를 혼자 먹는다. 작은 녀석이 대식가인 셈이다.

고도의 집중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뇌의 연료인 글루코스가 바닥난다. 전두엽이 먼저 기능을 줄인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사소한 결정도 힘들어진다. 심리학에서 '결정 피로'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48시간째 코드를 붙잡고 있는 사람이 변수 이름 하나에 20분을 쓰는 이유가 이거다.

새벽 해커톤 현장 — 에너지 드링크와 노트북이 빼곡한 테이블
새벽 2시의 책상 위. 코드와 카페인이 공존한다. (연출 이미지)

그래서 커피를 마신다. 카페인은 뇌에서 피로 신호를 보내는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의 자리를 뺏는다. 피로감을 못 느끼게 막아버리는 거다. 동시에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뇌의 정보 처리 속도가 일시적으로 올라간다.

해커톤 참가자들이 새벽마다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붓는 건 습관이 아니다. 생존 본능에 가깝다.

해커톤 72시간, 스낵바의 시간표

Day 1 · 14시

시작의 에너지

팀 구성, 브레인스토밍. 아직 모두 멀쩡하다. 간식에 관심 없다. 커피만 간간이.

Day 1 · 22시

첫 번째 벽

초기 아이디어가 막힌다. 슬슬 커피 소비가 올라간다. 스낵바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

Day 2 · 03시

새벽의 고비

포도당 바닥. 판단력 저하. 컵라면과 에너지 드링크가 생존 도구가 되는 시간.

Day 2 · 14시

두 번째 바람

밤새운 뒤 오히려 묘한 각성. 프로토타입이 윤곽을 잡는다. 견과류와 과일이 빠르게 사라진다.

Day 3 · 02시

마지막 밤

완성을 향해 달리는 시간. 따뜻한 차와 가벼운 빵이 의외로 인기. 자극보다 위안이 필요한 시간대.

Day 3 · 10시

발표 30분 전

허브티 한 잔과 부드러운 베이커리. 떨리는 손을 잡아주는 마지막 연료.

새벽 2시의 스낵바

GS 해커톤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코드가 아니었다.

이틀 동안 한 번도 비지 않은 스낵바였다.

보통 기업 행사의 다과는 이렇다. 커피포트 하나, 쿠키 한 접시, 생수 한 줄. 오후 3시면 바닥난다. 아무도 안 채운다. 예산에 다과비 좀 잡아놓고 끝. 해커톤이든 워크숍이든 마찬가지다.

GS 해커톤은 달랐다.

350명이 이틀 동안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스낵 스테이션이 가동됐다. 견과류, 에너지바, 과일, 음료, 컵라면. 시간대별로 구성이 바뀌었다. 오후에는 상큼한 과즙 음료와 쿠키. 새벽에는 에너지 드링크와 짭짤한 스낵. 긴장을 풀어줄 맥주도 있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스케일이 생각보다 크다"는 감탄이었다.

놀랄 만하다. 보통은 이걸 못 한다.

간식은 복지가 아니라 장비다

"스낵바가 그렇게까지 중요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 몰입의 단절을 막는다.

UC 어바인 연구팀에 따르면, 한 번 깨진 몰입 상태를 이전 수준으로 복구하는 데 평균 23분이 걸린다. 해커톤에서 23분은 치명적이다. 이틀 동안 매 식사 때마다 30분씩 빠지면 그것만 3시간이 넘는다. 스낵바가 팔 닿는 거리에 있으면? 코드에서 눈 떼지 않고 손만 뻗으면 된다.

둘. 벽을 허문다.

19개 계열사에서 모인 사람들이 첫날부터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기란 쉽지 않다. 직급도 다르고, 회사도 다르다. 그런데 맥주 한 잔을 손에 들고 과자를 나눠 먹는 5분이 그 벽을 허문다. 스낵바 앞은 자연스러운 스몰 토크의 장소가 된다. 별도의 아이스브레이킹이 필요 없다.

셋. 회사의 진심이 보인다.

5성급 호텔에서 풍성하게 차린 간식 테이블. 참가자들은 그걸 보면서 읽는다. "이 행사에 진심이구나." 어떤 훈화 말씀보다 설득력 있는 신호다. 실제로 GS 해커톤 참가자들 사이에서 "AI를 업무에 적용할 영감을 받았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그건 우연이 아닐 거다.

혁신은 빈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아무도 안 알려주는 것

해커톤 스낵바 — 깔끔하게 세팅된 간식과 음료 스테이션
수백 명분의 스낵바를 이틀 내내 유지하는 건, 코드 짜는 것만큼 어렵다. (연출 이미지)

실은 이 정도 규모의 스낵바를 유지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기업 총무팀이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대형마트에서 과자 몇 박스 사다가 테이블에 풀어놓는 거다. 해커톤 첫 3시간은 괜찮다. 그다음부터 무너진다.

비건인 직원이 먹을 게 없다.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이 디카페인을 찾는다. 당 섭취를 줄이는 사람이 제로 슈거 음료를 원한다. 300명의 취향은 300가지다. 마트에서 10가지 과자를 사다놓는 걸로는 감당이 안 된다.

더 큰 문제. 누군가는 빈 쓰레기통을 비우고, 미지근해진 음료를 교체하고, 새벽 3시에 바닥난 컵라면을 채워야 한다. 총무팀 직원이 그걸 맡으면 그 사람은 해커톤을 기획하는 대신 물병을 나르게 된다.

숫자로 보는 해커톤 시대

27만 명Google Gen AI 해커톤2025년 인도에서 열린 단일 해커톤 참가자 수
13,000명Anthropic Claude 해커톤 지원자500명만 선발. 수상자 5명 중 3명이 비개발자
1,500개90분 만에 만든 앱코딩 경험 없는 인도 문과 대학생 1,800명의 결과물
23분몰입 복구 시간한 번 깨진 몰입을 되찾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 (UC 어바인 연구)

달라지는 풍경

2년 전만 해도 사내 해커톤은 IT 부서의 일이었다. 개발팀끼리 모여서 프로토타입 만들고, 발표하고, 상금 받고 끝.

지금은 다르다.

2026년 2월, 서울 강남에서 열린 Cursor Hackathon Seoul. 250명이 지원하고 26팀 70명이 선발됐다. 5시간 만에 서비스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야 했다. AI 코딩 도구 하나로. 반응이 좋아서 4월에 2회차가 잡혔다.

헤렌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는 2025년 사내 AI 해커톤을 열었다. 27명이 14팀을 이뤘다. 전원이 바이브 코딩으로 작업했다. 코드를 직접 짠 사람은 없었다.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평가했다. "멋쟁이상"이라는 걸 줬다. 프레젠테이션 능력, 협업 기여도. 코드가 아니라 사람의 태도를 본 거다.

과기정통부의 AI 노코드 해커톤에서는 비개발자가 만든 전세사기 위험 탐지 서비스가 대상을 받았다. 영상 장면에 맞는 음악을 자동 생성하는 AI가 최우수상. 코드를 몰라도 문제를 정의할 줄 아는 사람이 이기는 시대가 왔다.

이런 회사들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헤렌은 직원들이 쿠팡에서 원하는 간식을 고르면 사내 스낵바에 무제한으로 채워주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심야 작업자에게는 저녁 식대와 택시비도 무제한이다.

과하다고? 그 회사는 알고 있는 거다. 사람의 뇌는 배가 고프면 혁신을 멈춘다는 걸.

해커톤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는 노트북이 아니다.

다음 해커톤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기업 해커톤을 기획하고 있다면, 노트북과 클라우드 계정만 준비하면 끝이 아니다. 그건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

수백 명이 이틀 동안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 새벽 2시에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 손 뻗으면 무언가가 있게 하는 것. 그리고 그 무언가가 초콜릿 산이 아니라, 그 시간의 뇌에 맞는 간식이게 하는 것.

스낵바를 행사장 구석에 놓지 마라. 한가운데 놓아라. 모든 동선이 겹치는 곳에. 사바나의 오아시스처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그곳에서 다른 팀과 우연한 대화가 일어나게. 스탠딩 테이블과 화이트보드를 옆에 두면, 간식 고르는 3분이 아이디어 회의가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둘째 날 저녁, 가장 지친 시간에 서프라이즈 야식을 드랍해라. 일상적인 간식과 다른, 약간 특별한 메뉴. 치킨이든, 수제 샌드위치든. 극적인 타이밍에 도착하는 음식은 그 어떤 훈화보다 힘이 세다.

우리가 본 장면이 하나 있다.

새벽 4시. 대부분의 팀이 지쳐서 속도가 느려진 시간이었다. 한 팀이 스낵 스테이션에서 따뜻한 차를 들고 돌아가면서, 옆 팀에게 한 잔 건넸다.

"이거 마셔봐. 좀 살 것 같아."

코드는 아마 기억 못 할 거다. 근데 그 순간은 기억한다.

72시간이 끝나고 남는 건 결국 그런 것들이다. 같이 밤새운 사람들. 새벽에 나눠 먹은 컵라면. 마지막 발표 전에 마신 따뜻한 커피.

가장 좋은 아이디어는 배부를 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