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9시.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초록색 스틱 하나를 뜯는다.
올리브유다.
"그거 뭐야?"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다. "올레샷이요." 2년 전엔 상상 못 할 풍경이었다. 탕비실 한쪽, 프로틴바와 견과류 사이에 올리브유 스틱이 꽂혀 있다. 수입산 엑스트라 버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기름을 왜 마시게 됐을까
시작은 TV였다. 2010년대 후반,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올리브유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모습이 나왔다. 그때만 해도 "파스타 만들 때 쓰는 거 아냐?" 정도의 반응이었다.
분위기가 바뀐 건 건강 프로그램 때문이다. 대사증후군 환자가 일반 식용유를 전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로 바꾼 뒤 혈관 수치가 극적으로 개선된 사례가 방영됐다. 중장년층 사이에서 "좋은 기름이 혈관을 청소한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결정적 한 방은 보그 코리아였다. 2024년 2월, "아침 공복에 올리브 오일 한 스푼이 주는 혜택"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할리우드 셀럽들의 웰니스 루틴과 나란히 놓인 올리브유. 2030 여성들이 반응했다.

올레샷 신드롬
올레샷.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한 스푼에 레몬즙 한 스푼을 섞어 아침 공복에 마시는 루틴이다. 저속노화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2025년에 폭발했다.
아이브 장원영이 올레샷을 즐긴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가수 엄정화, 배우 기은세도 합류했다. 안무가 배윤정은 출산 후 3개월 만에 13kg을 감량하면서 올레샷을 언급해 화제가 됐다.
방송인 최화정도 빠질 수 없다. 유튜브 채널을 열자마자 한 달 만에 구독자 50만을 넘긴 그는 스페인 왕실 납품 브랜드 오로바일렌 올리브유를 추천하며 공복 섭취를 알렸다. 최화정이 쓰는 제품은 곧 품절이 된다. 올리브유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름은 나쁜 거라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 기름을 일부러 찾아 마시는 시대가 됐다.
”

진짜 효과가 있긴 한 건가
유행이라서 마시는 걸까. 근거가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꽤 탄탄하다.
프랑스 보르도대학교 연구팀이 65세 이상 7,625명을 5년간 추적했다. 올리브유를 자주 섭취한 그룹은 거의 안 먹은 그룹 대비 뇌졸중 발병 위험이 41% 낮았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교는 하루 반 스푼 이상 먹으면 치매 위험이 28% 줄어든다는 연구를 냈다.
혈당 관리에도 효과가 있다. 미국당뇨협회 저널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올리브유는 인슐린 수용체의 민감성을 높이고 위에서 소장으로 음식이 넘어가는 속도를 늦춘다. 식후 혈당 스파이크를 완화하는 원리다.
한 가지 더. 영양 전문가들은 올리브유를 약처럼 단독으로 마시기보다 샐러드나 채소에 뿌려 먹을 때 흡수율이 더 높다고 말한다. 지용성 비타민(A, D, E, K)이 기름과 만나야 제대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병에서 스틱으로
효능은 알겠는데, 문제가 있었다. 500ml 유리병을 매일 아침 꺼내서 숟가락에 따라 마시는 건 번거롭다. 뚜껑 열 때마다 산소가 들어가고, 기름은 산패하기 시작한다. 겨울엔 하얗게 굳는다. 냉장고 온도만 돼도 올리브유는 응고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스틱형 올리브유가 등장했다.

이야이야앤프렌즈. 이름이 독특하다. '이야이야'는 그리스어로 할머니라는 뜻이다. 그리스 테살로니키 출신 디자이너 알렉시스 니쿠가 2017년에 만들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올리브 농장에서 갓 짠 기름을 먹여주던 기억. 그게 브랜드의 출발점이었다.
크레타섬 전용 농장에서 코로네이키 품종만 저온 압착한다. 병 제품보다 ml당 단가는 비싸다. 그래도 사람들이 산다. 이유는 세 가지.
하나, 산패가 없다. 질소 충전으로 산소를 차단한 채 밀봉된다. 뜯기 전까지 최상의 상태가 유지된다. 둘, 정량이다. 숟가락에 눈대중으로 따르면 과다 섭취하기 쉽지만, 스틱은 1회분으로 고정이다. 셋, 들고 다닐 수 있다. 가방에 넣으면 된다.
이야이야앤프렌즈만 있는 건 아니다. 오로바일렌은 미니컵 형태로 나오고, GNM은 대용량 가성비 라인을 깔았다. 올리브유에 레몬즙을 섞은 올레샷 세트도 별도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올리브유를 마신다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제품군이 된 거다.
탕비실이 달라지고 있다
변한 건 올리브유만이 아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5 식품 소비행태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식품 구매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1위가 '건강'이었다. 전년까지 부동의 1위였던 '가격 합리성'을 처음으로 제쳤다.
이 흐름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수십 년간 탕비실을 지배하던 건 저렴한 믹스커피와 대용량 과자였다. 총무팀의 목표는 단순했다. 한정된 예산으로 매대를 꽉 채우는 것.

지금은 다르다. 당류를 낮춘 프로틴바, 무염 견과류, 동결 건조 과일칩이 매대 중심을 차지한다. 냉장고엔 식물성 우유와 유기농 토마토즙이 들어간다. 그 옆에 올리브유 스틱이 놓인다.
글로벌 시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과반 이상이 클린 라벨 스낵과 기능성 제품을 선호하고, 무설탕 옵션을 찾는 비율도 빠르게 늘고 있다. 대한민국 사무실에서도 체감되는 변화다.
“간식이 바뀌면 탕비실이 바뀌고, 탕비실이 바뀌면 회사의 문화가 바뀐다.
”
숫자로 읽는 올리브유 트렌드
기름이 탕비실에 놓이기까지
할머니의 기름이 브랜드가 되다
그리스 디자이너 알렉시스 니쿠, 이야이야앤프렌즈 설립
한국 올리브유 수입 3만 5천 톤 돌파
2019년 대비 2.5배. 프리미엄 올리브유 수요 급증
보그 코리아, 공복 올리브유 기사
할리우드 웰니스 루틴으로 소개. 2030 여성 폭발적 반응
스틱형 시대 개막
이야이야앤프렌즈 스틱 Red Dot Best of Best 수상
올레샷 신드롬
장원영·배윤정 등 셀럽 합류. 검색량 31만 건, 음식 카테고리 1위
유지류 지각변동
이마트 올리브유 비중 62%. 대두유·옥수수유 14% 하락. 사무실 탕비실에도 진입
좋은 기름 한 포의 의미
올리브유 스틱 한 포. 뜯어서 마시는 데 5초.
그 5초가 만든 변화는 생각보다 크다. 병째 사던 기름이 스틱이 됐다. 부엌에 있던 식재료가 가방 속 루틴이 됐다. 개인의 건강 습관이 사무실 복지로 옮겨갔다.
2025년, 한국인이 식품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따지는 건 가격이 아니라 건강이다. 그 변화는 아침 9시 탕비실에서, 초록색 스틱을 뜯는 소리로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