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감자 하나에 진심인 회사가 만든 과자

감자 하나에 진심인 회사가 만든 과자
2026. 02. 26/과자/12분 읽기스낵왕 에디터

1분에 270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오리온의 생감자 스낵이 팔리고 있다. 포카칩, 스윙칩을 합쳐 누적 51억 개. 그중 포카칩은 2025년 상반기 한국 과자 매출 순위 2위. 1위 새우깡(578억)과 불과 34억 차이인데, 성장률은 8.1%로 10위권 내 최고였다. 쫓아가는 쪽이 더 무섭다.

한국 감자칩 시장에서 1994년 이후 31년 연속 1위. 빼앗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과자가 아니다. 생감자칩이다.

한 봉지에 감자 몇 개?

포카칩 한 봉지(66g)를 만드는 데 감자가 얼마나 들어갈까.

정답은 약 1~1.5개(220g 이상). 감자의 80~85%는 수분이니까. 얇게 썰어 고온에 튀기면 물만 날아가고 바삭한 칩만 남는다. 편의점에서 집어 드는 그 얇은 봉지 안에, 주먹만 한 감자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포카칩은 100% 생감자를 슬라이스해서 만든다. 프링글스? 감자 함량 42%. 나머지는 밀가루와 전분이다. 같은 감자칩이라고 부르기엔 좀 다른 물건인 거다.

감자에 진심인 회사

포카칩 감자칩 클로즈업
100% 생감자를 1.3mm 두께로 슬라이스한다. 0.01mm 단위의 집착이 31년간 1위를 만들었다. (연출 이미지)

오리온에는 감자연구소가 있다.

이유가 있다. 한국산 감자는 원래 칩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수분이 너무 많고 당도가 높아서, 튀기면 눌어붙거나 갈색으로 변했다. 외국처럼 수분 낮고 전분 높은 칩용 감자가 국내에는 아예 없었다. 그래서 연구소를 지었다.

1988년, 강원도 평창에 세운 국내 최초의 민간 감자 연구시설. 여기서 하는 일은 하나. 더 맛있는 감자를 만드는 것. 전 세계에서 과자를 만들겠다고 감자 품종까지 직접 개발하는 기업이 몇이나 될까. 셋이다. 미국 펩시코(레이즈), 일본 가루비, 그리고 오리온. 2000년에 '두백', 2023년에 '진서', 2024년에 '정감'. 두백은 현재 국내 여름 감자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감자의 약 20%가 오리온이 만든 품종이라는 얘기다.

포카칩 한 장의 두께. 1.3mm.

그런데 이 두께가 매년 달라진다. 그 해 감자의 고형분(전분) 함량이 작황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오리온 연구원들은 매해 수확한 감자의 성분을 분석하고, 0.01mm 단위로 최적 두께를 다시 정한다. 올해의 바삭함과 작년의 바삭함이 같은 두께에서 나오리란 법은 없으니까.

감자는 저장도 까다롭다. 수확 후 온도와 습도가 틀어지면 당도가 올라가고, 튀길 때 갈변한다. 오리온은 감자 신선도 유지를 위한 저장 기술까지 자체 연구하고 있다. 수확기 국내산부터 비수확기 수입 감자까지, 연중 일정한 품질의 칩을 만들기 위해서다. 감자 키우는 것도 모자라 보관까지 직접 연구한다.

1988년, 스승에게서 배운 기술

1988년 감자칩 공장 생산라인
프리토레이에서 들여온 기술. 생감자를 슬라이스해서 튀기는 라인이 한국에서 처음 돌아갔다. (연출 이미지)

1980년대 후반의 한국 과자 시장을 떠올려 보자. 새우깡, 꼬깔콘, 양파링. 전부 밀가루다. 반죽을 튀기거나 굽는 게 이 시장의 전부였다.

사실 먼저 도전한 회사가 있었다. 농심이 1980년에 '포테토칲'을 내놓았다. 이후 '크레오파트라 포테토칲'으로 이름을 바꾸며 재도전했지만, 당시 국내산 감자의 한계와 기술 부족으로 시장을 키우지 못했다. 생감자칩의 가능성은 열렸지만, 문을 완전히 연 건 아니었다.

1987년, 오리온(당시 동양제과)이 미국 펩시코와 손을 잡았다. 합작회사 오리온프리토레이를 세우고, 레이즈(Lay's)를 만드는 프리토레이의 감자칩 기술을 통째로 들여왔다.

1988년 7월. 포카칩이 세상에 나왔다.

그러고 보면 이 관계는 묘하다.

2004년, 오리온은 펩시코가 보유하던 지분 37.5%를 450억 원에 인수했다. 기술을 배울 만큼 배웠으니 독립한 거다.

그리고 2017년, 베트남. 포카칩(현지명 '오스타')이 레이즈를 꺾고 스낵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스승의 기술로 태어난 제자가, 스승의 홈그라운드에서 스승을 이긴 셈이다. 프리토레이 본사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불량감자의 탄생

불량감자 구출작전 게임 화면
불량감자 광고의 인기에 힘입어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까지 만들어졌다. 과자 광고가 게임이 된 사례는 한국에서 이것이 거의 유일하다.

1998년. 포카칩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가 나왔다.

'불량감자.' 포카칩의 까다로운 선별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감자의 이야기다. 배우 김진과 엄앵란이 출연한 이 시리즈에서, 탈락한 감자는 처량한 얼굴로 공장을 떠난다. 솔직히, 감자한테 감정이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모든 감자가 포카칩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국 7개 도, 300여 농가에서 연간 16,000톤의 감자를 조달하지만, 고형분 함량과 크기를 통과한 감자만이 1.3mm의 영광을 얻는다.

"불량감자"는 그 해 유행어가 됐다. 인기에 힘입어 '김진감자의 앵란감자 구출작전'이라는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까지 만들어졌다. 과자 광고가 게임이 된 사례. 한국에서 이것이 거의 유일하다.

이후 김수현(2013년, 88년생 동갑 콘셉트)과 원빈(2014년, "주먹만 한 감자 두 개로 한 봉지")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오래 기억하는 건 여전히 불량감자다. 결국 캐릭터가 모델을 이긴 거다.

과자에도 제철이 있다

포카칩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하나 있다.

맛이 계절마다 다르다.

여름은 아이스크림에 밀려 과자가 주춤하는 시기다. 습해서 눅눅해지고, 더우면 과자에 손이 덜 간다. 그런데 포카칩은 이걸 뒤집었다. 6월~11월에는 전국 300여 농가에서 수확한 국내산 햇감자를 쓴다. 12월~5월에는 미국산 또는 호주산 수입 감자. 같은 포카칩인데, 여름에 먹는 것과 겨울에 먹는 것의 풍미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아마 대부분은 눈치 못 챘을 거다. 그런데 알고 나면 좀 신경 쓰인다.

오리온은 아예 매해 6월마다 "제철 1등 햇감자칩"이라는 마케팅을 건다. 2025년에는 한 봉지에 일자컷, 사선컷, 직각컷 3가지 모양을 넣은 '햇감자 3MIX'를 한정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과자에 "제철"이라니. 이런 단어를 쓸 수 있는 스낵이 또 있을까.

오리지널 vs 어니언: 끝나지 않는 논쟁

포카칩 오리지널과 어니언
하늘색이냐, 초록색이냐. 한국 감자칩 최대의 논쟁. (연출 이미지)

편의점에서 포카칩을 집어 들 때, 당신은 어느 쪽인가.

오리지널파의 논리는 간결하다. "감자칩은 감자 맛을 먹는 거다." 소금만으로 감자 본연의 맛을 살린 하늘색 봉지. 감자가 좋으면 양념이 필요 없다는 순수주의. 글쎄, 일리가 있다.

어니언파는 웃으며 받아친다. "그래서 어니언이 4년 먼저 나온 거다." 양파의 달콤함이 감자의 담백함과 만나면, 오리지널에는 없는 깊이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포카칩의 역사 자체가 어니언에서 시작됐으니, 원조를 건드리는 건 좀 그렇지 않냐는 논리.

판매 비율은 오리지널 55%, 어니언 45%. 근소하다.

여기에 2024년, 복병이 나타났다. 8년 만에 부활한 스윗치즈맛. 2016년 단종 이후 공식 홈페이지, SNS, 고객센터에 재출시 요청이 쇄도했다. 오리온 스낵 중 역대 재출시 요청 1위. 결국 팬들이 이긴 거다. 회사가 접었다고 소비자가 되살린 과자.

  • 오리지널 -- 감자 본연의 맛. 하늘색 봉지
  • 어니언 -- 양파의 달콤함. 초록색 봉지. 원조
  • 스윗치즈 -- 8년 만의 부활. 팬덤의 승리
  • 트리플페퍼 -- 2025년 신제품. 블랙+화이트+레드 후추

감자에 정직한 가격

포카칩의 가격 인상 이력은 좀 이상하다. 1995년 1,000원에서 2015년 1,500원. 20년간 고작 500원(50%). 같은 기간 식료품 물가는 126.6% 올랐는데.

2015년에는 오히려 용량을 10% 늘렸다. 60g이 66g으로, 124g이 137g으로. 가격은 동결. 봉지 안 빈 공간도 환경부 기준(35%)보다 낮은 25% 미만으로 줄였다. 질소를 덜 넣은 거다.

37년의 궤적

1987

합작의 시작

오리온(동양제과)과 미국 펩시코 합작. 오리온프리토레이(주) 설립. 레이즈(Lays)의 기술을 한국에 들여왔다.

1988

포카칩 탄생

7월, 어니언맛으로 첫 출시. 동시에 강원도 평창에 감자연구소 설립. 한국 최초의 생감자칩.

1992

오리지널의 등장

짭짤한 맛(현 오리지널) 출시. 하늘색 패키지의 시작.

1994

감자스낵 1위

시장점유율 1위 달성. 이후 31년간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1998

불량감자 탄생

역사상 가장 유명한 광고 시리즈. 유행어가 되고 게임까지 만들어졌다.

2004

독립

펩시코 지분 37.5%를 450억 원에 인수. 완전한 오리온 브랜드로.

2012

연매출 1,000억

감자스낵 최초 연매출 1,130억 원 달성.

2015

착한 과자로

용량 10% 증량(60g→66g) + 포장 개선. 20년간 500원만 인상한 착한 가격.

2017

스승을 넘다

베트남에서 Lays를 꺾고 스낵 시장 점유율 1위 달성.

2025

글로벌 4조

생감자 스낵 글로벌 누적매출 4조 원, 51억 개 돌파.

숫자로 읽는 포카칩

31년연속 1위1994년 이후 감자스낵 시장 부동의 1위
51억+글로벌 누적 판매1분에 270개씩 팔리는 속도
0.0002%신품종 확률50만 개 종자에서 1~2개만 살아남는다
3곳감자 품종 자체 개발오리온, 펩시코, 가루비. 세계에서 셋뿐이다

감자밭에서 세계로

감자밭에서 세계로
강원도의 감자밭에서 시작해 베트남, 중국, 러시아까지. 감자칩 하나로 4조 원. (연출 이미지)

포카칩은 한국 밖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베트남에서는 '오스타(O'Star)'. 2017년부터 스낵 시장 점유율 1위다. 오리온이 직접 개발한 씨감자(두백, 진서)까지 베트남에 수출하고 있고, 현지 약 1만 가구와 계약재배를 운영하며 '고향감자 프로젝트'를 10년째 이어가고 있다. 과자만 파는 게 아니라 감자 농사까지 같이 짓는 거다.

중국에서는 오리온의 생감자 스낵 '하오요우취(好友趣)'가 2024년에만 1,600억 원 이상을 팔았다. 역대 최고 기록.

러시아. 오리온 법인 전체가 폭발적으로 크고 있는 시장이다. 2025년 법인 매출 3,394억 원, 전년 대비 47% 증가. 트베리에 2,400억 원 규모의 신공장 투자까지 시작했다.

해외 판매 사이트에는 포카칩을 이렇게 묘사하는 리뷰가 올라온다. "Clean, pure potato taste." "Exceptionally thin." 깨끗한 감자 맛, 극도로 얇은 두께. 그게 전부인데, 그게 전부다.

강원도 평창의 감자연구소에서 시작된 집착이 베트남의 편의점과 중국의 슈퍼마켓, 러시아의 공장까지 닿았다. 결국 감자에 진심이면, 세계가 알아본다.

37년이 지났다.

밀가루 스낵밖에 없던 나라에 생감자칩이라는 카테고리를 처음 만든 과자. 맛있는 과자를 만들겠다고 감자 품종을 10년에 걸쳐 직접 개발하는 과자. 20년간 500원만 올리고 양은 오히려 늘린 과자. 8년간 팬들이 돌아오라고 외친 스윗치즈를 결국 다시 꺼내준 과자.

편의점 진열대에서 하늘색 봉지와 초록색 봉지 사이를 오가는 그 3초.

그 3초가 37년째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