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헬스장에서 라운지를 지나면 그릭요거트가 기다린다.
누가 채워두는지 진우는 모른다. 그냥 늘 거기 있었다.
진우는 32세. 강남권 IT 스타트업의 백엔드 개발자다. 직원 200명대, 5층 사옥. 헬스장이 그 안에 있다. 7시에 도착해서 한 시간 운동하고, 샤워하고, 라운지에 들렀다 책상으로 간다. 그게 매일이다.
그가 라운지에서 챙기는 건 그릭요거트 한 컵, 단백질바 하나, 견과류 한 줌. 책상에서 다 먹기 전에 9시 미팅이 시작된다.

탕비실은 어쩌다 라운지가 됐나
한 회사가 자기 사무실 한 칸을 뭐라 부르는지가, 그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말한다.
실리콘밸리의 사옥 한 칸에는 '탕비실'이라는 이름이 없다. 구글에는 '마이크로키친(Microkitchen)'이 있다. 70개 사무실에 1,300개 가까이 흩어져 있고, 단백질바와 견과류는 눈높이에, 사탕은 불투명한 통 안에 있다. 애플 파크의 '카페 맥스(Caffè Macs)'에서는 식사를 직원 전용 앱으로 주문한다. 비프와 포크는 메뉴에서 거의 빠졌다. 메타의 멘로파크 캠퍼스에는 '해커 스퀘어(Hacker Square)' 광장을 둘러싸고 일곱 개의 무료 식당이 모여 있다. 디즈니랜드를 설계한 컨설턴트들이 이 거리를 그렸다. 살레스포스 타워의 '오하나 플로어(Ohana Floor)'는 최상 두 층에 있다. 25,000그루의 식물과 360도 도시 뷰가 있는 자리다. 직원과 고객과 비영리 단체가 같이 쓴다.
탕비실(湯沸室). 차를 우리던 곳이라는 뜻의 일본식 한자어다. 1980년대 한국 사무실 한 칸의 표준 이름이었다. 그땐 율무차와 박카스, 믹스커피가 그 자리를 채웠다.
2026년의 라운지는 다른 풍경이다. 그릭요거트와 단백질바가 트레이에 쌓여 있고, 바리스타급 커피머신과 통유리 너머의 햇살이 있다. 회사가 직원에게 무엇을 챙겨주는지가 그 한 칸에 다 모여 있다.
회사가 사옥에 헬스장을 들이는 이유
이건 운동하는 사람의 시대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국민생활체육조사를 보면, 한국인 60.7%가 주 1회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한 해 사이 헬스(보디빌딩)가 등산을 제치고 걷기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MZ세대로 좁히면 운동 경험자의 91.6%가 주기적이고, 70%는 자기 운동을 기록한다. 한국 피트니스 시장은 2025년 약 6,300억 원 규모, 매년 8%씩 자란다.
사옥의 풍경이 바뀐 건 그 다음 일이다.
네이버 1784에는 부속의원과 헬스장과 수면실이 한 건물에 묶여 있다. 점심과 저녁이 무료다. 애플 파크 한가운데의 웰니스 센터는 100,000평방피트, 2층짜리 요가룸과 의료·치과까지 같은 자리에 있다. 두 곳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회사가 직원의 몸 상태를 직접 챙기겠다는 신호다.
LG 트윈타워는 1987년에 지어졌다. 37년이 지난 2024년, 처음으로 저층부를 통째로 리모델링했다. 새 이름은 '커넥트윈'. 그 안에 들어선 시설 가운데 직원 수요조사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것이 피트니스센터였다. '트윈 피트니스'라는 이름의 이 공간은 동시에 110명을 수용한다. 같은 해, 구글은 1,300개 가까운 마이크로키친의 진열을 다시 짰다. 단백질바와 견과류는 눈높이에, 사탕과 탄산은 불투명한 통 안에. '프로젝트 M&M'이라는 이름의 사내 실험에서 시작된 일이다. 7주 만에 뉴욕 사무실에서만 310만 칼로리가 줄었다.
쿠팡은 물류센터 직원을 위해 헬스케어센터 3호점까지 열었다. 4주 동안 업무를 멈추고 건강 관리만 하는 '쿠팡케어' 프로그램에 참여한 직원의 73%가 건강 지표가 개선됐고, 98%는 근골격계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임직원의 삶에 활기와 영감을 불어넣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다. — LG 관계자, 조선일보 2024.03.29
”
회사가 자기 돈을 들여 헬스장을 짓고, 라운지를 디자인하고, 단백질을 채운다. 한국이든 실리콘밸리든 답은 같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운동하는 직원이 더 많이 결정한다
답은 데이터에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2023년에 200명을 열흘간 추적했다. 매일 운동한 직원은 다음 날 더 잘 잤고, 더 활기찼고, 더 집중했다. 연구진은 그 효과를 'resource caravans'라고 불렀다. 운동이 그날만의 일이 아니라 다음 날의 자원을 만든다는 의미다. 운동한 직원은 자기 일에 대한 효능감(job self-efficacy)도 더 높았다.
뉴욕대 신경과학자 웬디 스즈키는 더 강한 결론을 낸다. 단 한 번의 중강도 유산소 운동 50분이 전두엽 기능을 향상시킨다. 주의력과 작업기억이 좋아진다. 효과는 운동 후 30분에서 두 시간까지 지속된다.
“운동은 그날 끝나는 게 아니다. 다음 날의 자원이 된다. — Harvard Business Review, 2023
”
그게 비용으로 돌아온다.
하버드 연구진이 2010년에 계산했다. 직원 웰니스 프로그램에 1달러를 쓰면, 회사는 6달러를 회수한다. 의료비 3.27달러, 결근비 2.73달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CDC가 56개 연구를 종합한 결과는 더 단순하다. 결근비, 의료비, 산재, 장애 관련 비용이 통째로 25% 줄어든다.
맥킨지는 2025년 다보스에서 더 큰 숫자를 던졌다. 직원 건강을 개선하면 글로벌 GDP가 4~12% 오른다. 금액으로는 11조 7천억 달러. 멘탈 헬스 이슈가 있는 직원은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이직 의향이 4배 높다.
리멤버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3년차 이내 신입 1,000명에게 물었다. 83%가 이직이나 퇴사를 고려한다고 답했다. 1순위 이유는 "내 커리어가 성장한다는 느낌이 안 들 때"였다. 사람을 챙기지 않는 회사의 문제다.
복지가 아니라 생산성 투자다. 회사가 직원의 운동에 돈을 쓰는 이유다.
30분 안에 안 챙기면 손해라는 말
운동을 하면 단백질을 채우라는 말은 맞다. 그런데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다.
오래 통용되던 통설이 하나 있다. 운동 직후 30분 안에 단백질을 먹어야 근육이 자란다는 '아나볼릭 윈도우' 이론이다. 헬스장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말이다.
근데 2013년, 운동영양학자 브래드 쇼엔펠드가 학술지에 발표한 메타분석이 그 통설을 흔들었다. 그가 분석한 23개 연구의 결론은 분명했다. 근육의 단백질 민감도는 운동 후 24시간에서 48시간까지 유지된다. '30분'에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더 중요한 건 하루 전체의 단백질 총량이다.
“근성장의 기회의 창은 알려진 것처럼 좁지 않다. 하루 전체의 영양 균형이 타이밍보다 우선한다. — Brad Schoenfeld, JISSN, 2013
”
그렇다고 단백질을 안 챙겨도 된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2022년 하버드가 77,000명을 20년 추적한 연구가 있다. 식물성 단백질이 탄수화물의 5%만 대체해도 치매 위험이 26% 줄었다. 콩과 식물(콩, 완두콩, 리마콩)을 주에 세 번씩 더 먹으면 그 비율은 28%로 올랐다.
국제스포츠영양학회는 2017년 입장문에서 권장량을 제시했다. 운동인은 체중 1kg당 1.4~2.0g, 저항운동을 하는 사람은 1.6~1.8g. 75kg 직장인이면 하루 약 130g이다.
이 숫자는 한국인에게도 의미가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 12월 31일, 5년 만에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을 개정했다. 단백질이 차지해야 할 에너지 비율의 하한선이 7%에서 10%로 올라갔다. "탄수화물 줄이고 단백질 늘리세요." 이게 처음으로 국가의 권고가 됐다.
한국 단백질 시장이 말해주는 것
이 변화는 시장에서도 보인다.
2018년 813억 원이던 한국 단백질 시장은 2023년 4,500억 원이 됐다. 5년 만에 6배다. 2026년에는 8,000억 원이 될 것으로 식품업계는 본다.
일동후디스의 '하이뮨'은 2020년에 출시됐다. 5년 7개월 만인 2025년 9월, 누적 매출이 6,000억 원을 넘었다. 매일유업 셀렉스도 누적 5,000억 원을 돌파했다. 빙그레의 '더:단백'은 출시 2년 만에 3,000만 개가 팔렸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의 RTD 단백질 음료 시장은 1,245억 원 규모로 세계 5위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연평균 81%씩 성장했다. 이런 속도로 크는 시장은 흔치 않다.
그릭요거트는 어떤가. 2015년 250억 원이던 시장이 2024년 1,028억 원이 됐다. 풀무원다논의 '풀무원요거트 그릭'은 2026년 3월 누적 5억 개를 팔았다. 9개월 만에 1억 개가 더 팔린 셈이다.
빅테크 라운지의 트레이가 그릭요거트와 단백질바로 채워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진우의 아침
다시 진우의 라운지로 돌아가자.
7시 50분, 운동을 끝낸 진우는 샤워실로 간다. 옷을 갈아입고, 5층 라운지로 올라간다. 통유리 너머로 5월 아침 햇살이 쏟아진다. 트레이에는 그릭요거트가 늘어서 있다. 단백질바가 종류별로 진열돼 있다. 견과류 박스. 삶은달걀.
진우는 그릭요거트 하나, 단백질바 하나를 집는다. 책상으로 가져가 노트북을 켠다. 슬랙이 띄워지기 전에 그릭요거트의 뚜껑을 연다. 단백질 17g. 단백질바 하나가 더해져 약 35g. 점심에 닭가슴살 샐러드를 먹으면 80g까지 차오른다. 오후에 견과류 한 줌을 챙겨 먹는다. 저녁은 집에서 단백질 위주로 차린다. 그러면 목표한 130g이 채워진다.
진우는 이 숫자를 매일 계산하지 않는다. 그냥 라운지에 늘 있는 것들을 챙기기만 한다. 회사가 알아서 채워두니까.
직원이 신경 쓸 게 줄어든다는 것
작년 가을, 판교의 한 회사에서 사건이 있었다. 한 직원이 라운지의 간식 170개를 당근마켓에 일괄 판매로 올렸다. 카누 아메리카노 180개도, 맥심 커피 믹스 170개도 같이 올렸다. "하나에 110원꼴." 누군가 이걸 발견했고, 회사 게시판이 들끓었다. 회사는 공지를 띄웠다.
“회사 간식은 직원 복지 차원에서 제공되는 혜택입니다. 개인 이익을 위한 중고 판매는 엄격히 금지합니다. — 2024년 9월, 판교 모 회사 공지
”
이 사건이 사회면 뉴스로 나왔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건 단순하다. 회사 간식이 가져갈 만한 것이 됐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170개를 빼돌릴 만큼 가치 있는 자산으로 봤다. 우리가 매주 채우는 입장에서 보면, 이건 흔한 풍경이 아니다.
사이클의 완성
회사가 직원의 운동에 돈을 쓰면, 직원은 더 적게 아프고 더 잘 결정한다. 그 효과는 다음 날의 집중력과 효능감으로 돌아온다. 회사가 라운지에 단백질을 채우면, 직원은 운동의 효과를 잃지 않고 일에 가져올 수 있다. 그 사이클이 굴러가는 동안, 직원이 신경 써야 할 일은 줄어든다.
운동 → 단백질 → 집중 → 결과. 이 네 칸을 회사가 통째로 디자인해주는 시대다. 그게 직원에게는 신경 끄기로 돌아오고, 회사에는 생산성과 채용과 이직률 시그널로 돌아온다. 1달러를 쓰면 6달러가 돌아온다는 하버드의 계산은, 그 사이클의 한 단면을 본 것뿐이다.

퇴근하면서 진우는 라운지를 흘긋 본다. 트레이는 거의 비어 있다. 누군가가 또 채워둘 것이다. 내일 아침에도, 그릭요거트는 거기 있을 것이다.
회사가 잘하고 있다는 신호는 거창하지 않다. 매주 같은 자리에 같은 그릭요거트가 있다는 것. 사이클이 끊기지 않는다는 것.
최고의 복지는 시설이 아니라 사이클의 완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