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 탕비실 문이 열린다.
누군가 서랍에서 노란 봉지 하나를 꺼내 조용히 뜯는다. 껍질도 부스러기도 없이, 밤알 몇 개가 손바닥에 굴러 나온다. 맛밤은 그렇게 사무실에 산다.
근데 이 간식, 출발은 겨울이 아니었다. 2004년 5월, 군밤 장수가 자취를 감추는 여름 문턱에 굳이 밤을 팔겠다고 나섰다. 맛밤이 탕비실까지 온 길은 그 엉뚱한 역발상에서 시작된다.
밤이 여름에 팔리겠느냐
CJ제일제당의 2013년 보도자료에는 출시 전 분위기가 남아 있다. 주변에서는 "과연 밤이 여름에 팔리겠느냐"고 걱정했지만, 회사의 계산은 반대였다. 여름에 찾기 힘든 밤이라서 오히려 눈에 띈다는 것이다.
2006년 8월 중앙일보 기사는 이 장면을 더 자세히 적었다. 2004년 봄, 마케팅 실무자들 책상에 밤과 고구마, 땅콩이 올랐고 소비자 조사는 밤 쪽으로 기울었다. "밤은 겨울용인데"라는 반론이 나왔지만 결론은 결국 밤. 지금 들어도 좀 무모하다.
“밤이 없는 계절에 밤을 내놓는 것, 그게 첫 번째 설계였다.
”
결과는 생각보다 빨랐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그해 여름 매출만 10억 원 수준, 첫해 매출은 50억 원대였다. 군밤이 거리에 깔리는 겨울이 비수기가 될 거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군밤 돌판을 공장으로
CJ제일제당 브랜드 페이지에 따르면 밤은 저온숙성으로 당분을 끌어올린 뒤 자갈 위에서 서서히 굽는다. 군밤 장수의 돌판을 통째로 공장에 들여온 셈이다.
봉지 글씨에도 의도가 있다. 브랜드 페이지는 훈민정음 표기를 모티브로 '맛밤'을 썼다고 밝힌다. 겨울 군밤이라는 익숙한 기억을 글자에까지 담은 것이다.

리어카와 골프장

맛밤은 광고보다 현장에서 컸다. 중앙일보 기사에는 광주의 한 영업사원이 맛밤 전용 리어카를 할인점에 끌고 나온 이야기가 나온다. 할인점 한복판의 리어카, 한겨울 군밤 장수 그 자체다.
“허기를 채우되 손은 더럽히지 않는 간식, 골프장이 먼저 알아봤다.
”
당시 가격은 70g 한 봉지에 1,700원. 기자조차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가격이라고 적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샀다. 그 무렵 CJ가 소비자 500여 명에게 묻자 75%가 다시 사 먹겠다고 답했다.
한 번은 꺾였다
물론 꽃길만 있었던 건 아니다. 보도자료는 위기도 숨기지 않는다. 비슷한 제품이 쏟아지면서 2009년 매출이 전성기의 3분의 1 수준인 100억 원대로 줄었다. 꽤 아픈 숫자다.
회사는 방향을 틀었다. 건강한 간식에 지갑을 여는 2030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고, 올리브영과 편의점으로 판매 경로를 넓혔다.
맛밤 출시
5월 출시. 여름 매출 10억 원 수준, 첫해 50억 원대
현장 영업
할인점 리어카와 골프장 판매가 기사로 소개됨
한 번의 꺾임
미투 제품이 쏟아지며 매출이 100억 원대로 감소
출시 10년
누적 매출 2,000억 원, 누적 판매 6,000만 봉
그렇게 출시 10년째인 2013년, 누적 매출은 2,000억 원을 넘었다. 판매량은 6,000만 봉, 밤알로 세면 24억 개다.

봉지는 셋, 밤은 하나
지금 CJ제일제당 브랜드 페이지에는 맛밤, 맛군밤, 유기농 맛밤 세 제품이 올라 있다. 이름은 달라도 밤을 숙성하고, 굽고, 껍질을 벗겨 봉지에 담는다는 출발점은 같다.
브랜드 페이지는 맛밤을 건강한 스내킹 트렌드를 이끄는 '카테고리 대명사'라고 부른다. 자화자찬 같지만 근거가 없진 않다. 2013년 보도자료도 미투 제품 공세 속에서 1위 브랜드를 지켰고, 이미 월 20억 원 매출을 내고 있었다고 적었다.


사무실 입장에서는 고를 폭이 넓어졌다는 뜻이다. 유기농을 찾는 팀도, 군밤 특유의 구운 향을 좋아하는 팀도 있으니 탕비실 선반 한 칸 안에서 취향이 갈린다.
숫자로 읽는 맛밤
왜 사무실이었나
맛밤의 장점은 사무실 조건과 고스란히 겹친다.
첫째, 손이 깨끗하다. 껍질도 가루도 없어서 키보드 앞에서 먹어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 골프장에서 통했던 이유가 사무실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둘째, 양이 작다. 42g 한 봉지가 70kcal라 오후 허기는 달래고 저녁은 망치지 않는다.
셋째, 원재료가 한 줄이다. 밤 100%. 끝. 성분표를 뒤집어 보는 직원도 고민할 게 없다.
농사로에 실린 국가표준식품성분표를 보면 밤 100g에 식이섬유 5.4g, 비타민 C 15.98mg이 들어 있다. 농사로는 밤이 소량으로도 포만감을 준다고 설명한다.
“껍질 없는 군밤, 사무실이 원하던 건 결국 그거였다.
”
넷째, 보관이 쉽다. 레토르트 식품이라 상온 서랍에 둘 수 있고, 코스트코 상품 정보 기준 소비기한은 제조일로부터 7개월이다. 다만 개봉 후에는 쉽게 변질되니 한 번에 먹으라는 주의 문구가 붙어 있다.
맛밤의 시간은 점심 직후보다 오후 서너 시다. 회의는 길어지고 저녁은 멀고, 과자 한 봉지는 부담스러운데 커피만으론 허전하다. 그 틈에 손바닥만 한 봉지가 들어간다.
군밤의 계절, 탕비실의 계절
밤은 가을 작물이다. 농식품정보누리는 수확기를 늦여름부터 10월 중순까지로, 주요 산지를 전남 광양과 충남 부여, 경남 하동으로 적는다. 찬바람 불면 괜히 군밤 생각이 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맛밤은 이 가을의 계절감을 일 년 내내 끌고 다니지만, 겨울이면 존재감이 달라진다. 따뜻한 차 한 잔 옆에 놓이는 순간 군밤 냄새가 떠오른다.

탕비실에 둘 때 알아두면 좋은 것
몇 가지만 챙기면 된다.
- 소포장 위주로. 42g 한 봉지가 한 사람 몫이다. 개봉 후엔 오래 두기 어렵다.
- 차와 같이. 보리차나 둥굴레차 옆에 두면 손이 더 간다. 찬 바람 부는 계절의 짝꿍이다.
- 짠 간식과 섞어서. 새우깡이나 포카칩 같은 짭짤한 과자 사이에 두면 균형이 맞는다.
짭짤한 쪽이 궁금하면 새우깡이 반세기 넘게 팔린 이유와 포카칩 이야기도 같이 읽어 보자.
자주 묻는 질문
맛밤은 언제 처음 나왔나요?
2004년 5월입니다. CJ제일제당 보도자료와 헤럴드경제 기사 모두 이 시점을 적고 있어요.
한 봉지 열량은 얼마인가요?
유기농 맛밤 42g 기준 70kcal입니다. 식이섬유 1.3g, 당류 4g이 들어 있어요.
사무실에 두면 얼마나 보관할 수 있나요?
상온 보관 제품이고 소비기한은 제조일로부터 7개월이에요. 개봉 후에는 바로 드시는 게 좋습니다.
